매일경제 | 2019-02-24 

“우리와 함께 연구해보지 않겠습니까?” 최태근 메디웨일 대표(27)는 지난해 말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망막학회에서 인도의 안과의사 라지브 라만 박사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라만 박사는 구글의 지원을 받아 당뇨망막증을 진단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한 저명한 안과의사로, 관련 논문은 2016년 말 학술지 ‘자마(JAMA)’에 실린 바 있다. 당시 구글은 라만 박사와 협업해 눈 영상을 찍으면 당뇨망막증을 95% 정확도로 진단할 수 있는 AI를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세상을 놀라게 했던 라만 박사가 최 대표에게 협업을 요청한 것은 그만큼 메디웨일의 기술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구글이 당뇨망막증 질환만을 진단할 수 있는 반면, 메디웨일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개발한 ‘닥터눈’은 당뇨망막증 외에 황반변성을 포함한 망막질환, 녹내장 등의 질환을 95% 정확도로 진단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안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을 라만 박사가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닥터눈이 상용화하면 안질환 검사를 위해 굳이 대형의료기관을 찾지 않아도 눈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메디웨일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최 대표는 “닥터눈으로 1차 진단을 하고, 이상 소견이 보이면 전문의를 찾는 시스템이 완성되면 많은 사람들이 시력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르면 다음달 인도 병원과 함께 임상을 진행하게 된다”며 “구글보다 한발 앞선 AI 안저진단 기기를 올해 말 시장에 내놓겠다”고 말했다.

과학고를 거쳐 포스텍을 졸업한 최 대표는 과학고 선배이자 세브란스병원 안과 전문의인 임형택 교수에게 진료를 받던 중 오른쪽 눈에 심한 녹내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 대표는 “스트레스 때문에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생각했다”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말했다. 현재 오른쪽 눈의 시야는 절반에 불과하다. 최 대표는 “왼쪽 눈을 감으면 세상이 절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 같은 문제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 질병을 모르고 있을 그들의 문제를 발견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 교수와 최 대표는 2016년 10월, 한 팀이 됐다. 지난해 초 아산병원에서 개최한 AI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이근영 이사를 한 달 동안 쫓아다니며 팀원으로 영입했다. 또 다른 AI 개발자인 김영남 연구원 역시 끈질긴 설득 끝에 합류시켰다. 이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닥터눈에 10만장이 넘는 안저검사 영상을 넣어 훈련시켰다. 닥터눈은 안저검사 영상만으로 여러 안질환을 92%에 달하는 정확도로 예측했다. 현재는 정확도를 95%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지난해 말부터는 러시아 한티만시스크 연방과 닥터눈 도입 협약을 맺고 러시아 데이터를 기반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세브란스와 아산병원에서도 6월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 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메디웨일은 나아가 세브란스 심장내과 의사들과 함께 안저영상을 통해 심장질환을 예측하는 기술 개발도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특히 이 연구에는 눈과 전신질환의 관계를 대규모 역학연구로 밝혀낸 의료계 석학인 싱가포르대 의대 티엔웡 교수까지 참여했다. 최 대표는 “눈은 신체 장기 중 동맥과 정맥 혈관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며 “구글은 안저영상으로 나이와 성별, 혈압 등 전통적인 심혈관 위험인자를 예측하는 AI를 지난해 개발했다”고 말했다.

메디웨일이 개발한 닥터눈은 구글 AI를 뛰어넘어 심혈관 위험인자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지표인 ‘관상동맥석회화지수’까지 예측할 수 있다. 최 대표는 “곧 국제학술지에서 논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메디웨일의 올해 목표는 11~12월, 식약처 인증을 받은 AI 안저진단 기기를 출시해 건강검진센터에 보급하는 것이다. 건강검진센터에서 손쉽게 AI 안저진단 기기로 검사를 받도록 하면 보다 쉽게 초기에 안과질환 유무를 파악해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 환경이 뒤떨어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에 닥터눈 보급도 추진하고 있다.

최 대표는 “AI 안저진단 기술은 내게 운명 같은 일”이라며 “사람들이 건강한 시력으로 세상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